기침 한 번에 “너 혹시···?” 라는 말을 듣게 되는 코시국이 어언 반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 코로나는 많은 것을 사라지게 했고, 또 태어나게 했다. ‘코로나 블루’가 대수롭지 않은 요즘, 집콕에 지친 많은 이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며 노동 끝에 달고나 라떼를 만들고, 크루아상 생지를 와플 기계에 찍어 만드는 크로플도 탄생시켰다. 코로나 끝나긴 하겠지? 하며 정말 도움안되는 놈. 했는데, 크로플을 맛보고 순간 도움이 될 때가 있네? 라는 생각이 스쳐간 것을 반성하며··· 나는 와플을 사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크레페, 호떡, 팬 케이크 등 밀가루로 만든 두툼하고 몽실몽실한 것들을 사랑한다. 탄수화물 중독자로서 밀가루로 만든 디저트류는 나에게 너무나 황홀한 음식이다. 이런 황홀함은 스트레스를 받고나서 맛보았을 때 더 극대화되기 마련이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스트레스는 날아간다. 제3자에게 내가 어떤 일을 겪었고, 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설명하며 ‘그니까 나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라는 식의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뜨리기도 지쳤던 직장인 토련의 어느 하루. 이런 날은 회사 팀원들 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 마음대로 먹고 싶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다. 그렇지만 단순히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틀에 박힌 점심시간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 옥상에서 크로플을 먹자.’ 라는 아주 멋지고 대단한 생각을 해냈다. 그러고선 망설임없이 카톡을 보냈다. “남친아, 옥땅으로 따라와” 언제인가 한 번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 힘겨운 언덕길을 단숨에 오르게 하는 빵 냄새+단내가 풍겼다. 줄이 길게 늘어선 카페는 지하에 위치한 듯싶었고 크로플이 ‘크루아상과 와플의 합성어구나’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는, 그곳이 크로플의 성지일거라 생각치 못하고 지나쳤었다. 강민경이 세웠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크로플 맛집, 신사의 핫플 새들러하우스 말이다. 아픈 몸을 낫게 하는 절벽 위의 꽃을 얻기 힘든 것처럼, 나의 스트레스를 없애 줄 크로플을 얻기 위해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30분정도 줄을 서고 기다려야했다. 새들러하우스의 본캐 새들러 하우스는 모두 알다시피 크로플을 파는 카페가 아니다. 커스텀메이드 레더백 브랜드이고, 아뜰리에+쇼룸+카페가 결합된 공간이다. 원하는 컬러가죽, 형태, 부자재 소재 등을 골라 가방 외에도 러거지 택, 지갑 등 나만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가방을 파는 곳이 와플을 파는 곳으로 변하게 된 이유인 즉슨, 부캐였던 카페 메뉴로 프렌치 와플을 판매하던 중 그 맛이 입소문을 탔고 다비치 강민경의 유튜브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유튜브를 본 갬성러들은 새들러하우스로 모였고, 그 수요를 감당하다보니 크로플가게가 되어버린 것이다. 새들러 하우스의 부캐활동은 공식계정 게시글 하나만 봐도 당혹감이 느껴진다. 가방을 만드는 공장에서 크로플을 만드는 공간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가려 놓은 틈사이로 크로플 공장을 보았다. 빠른 회전율을 위해 바로바로 크로플을 구워내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면 카운터 옆 공간에서 만든 따끈한 크로플을 바로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운이 좋으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크로플을 얻을 수 있다! 이 영롱한 황금빛! 코로나로 인해 테이크아웃만 가능하고, 메뉴로는 테이크아웃 세트(플레인2 아메리카노2/13,900원)와 와플 세트(플레인2 치즈1 바질1/16,200원)이 있다. 옥수수가 들어간 콘은 한정 수량이라 오픈하고 바로 찾아가야만 맛볼 수 있다. 나는 골고루 맛보기 위해 와플 세트에 콘을 추가했다. 실물영접 ㅁ7ㅁ8바질 크로플과 콘 크로플 회사 옥상으로 가는 길 내내 봉투 안에 담긴 바질크로플 향이 내 인내심을 시험했다. 동시에 ‘바질은 향이 제일 강하니 가장 나중에 먹어야지’ 하는 철저한 계획도 세웠다. 옥상에 도착해서 끝내 주는 가을 날씨에 햇살을 느끼며 콘부터 한 입 베어 물었다. 콘은 내 기억에 50개 한정수량이었는데, 한정수량인 것 치고는 딱히 특별한 맛은 없었다. 옥수수가 톡톡 터지면서 아주 약간의 고소한 맛 정도? 옥수수보다 크로플의 고소함이 더 크고, 단 맛도 더해서 크로플 한입, 옆에 있는 콘옥수수 통조림을 한 입 먹는 것 같은 그런 맛? 크로플안에 스며들어있다기보다 그냥 박혀있어서 따로 노는 느낌. 크로플안에 옥수수가 들어가 있는 말그대로 콘 크로플이었다. 콘 다음 플레인을 먹었다. 오마이갓 고구마맛탕처럼 겉에 얇게 발린 설탕, 슈가파우더가 입술입 닿을 때 보송한 느낌이 들면서 더 군침을 돌게 했다. 구관이 명관(?) 이라고 가장 심플하지만 입안을 온통 사로잡는 그런 맛.. 역시 오리지널이 최고야. 아주 잘 구워진, 잘 만든 식빵은 양 손으로 찢었을 때 식빵 속이 닭가슴살 텍스쳐라던데, 크로플은 크루아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드럽고 바삭하다. 그렇지만 와플의 성격이 더 강해서 바삭한 맛이 더한데, 막상 뜯어보면 크로플 안에 겹이 살아있다. (와플 기계로 찍어 누른거다보니 크루아상처럼 한겹 한겹 느끼기엔 무리) 크로플이 많이 크진 않지만 한 두개 정도로 배가 찰 양이긴 해서 남은 크로플은 집으로 가져왔다. 월넛, 피스타치오를 좋아하는 할미입맛이라 집에 오는 길에 베스킨라빈스를 들러 아이스크림을 플레인 크로플 위에 올려 먹었다. 홀리몰리..!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 따끈한 크로플위에 세상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올라가니, 아이스크림이 살살 녹으면서 크로플 안으로 스며들었고 그 맛은 나도 녹여버렸다. 흐물흐물 좋은 건 크게 크게 치즈크로플은 체다 치즈가 녹여져 있는데 치즈향이 크로플 본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적당히 짭조름하면서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조금 식은 후에 먹어서 그런가?) 플레인과 거의 비슷하지만 단에서 짠이 조금 가미된 맛. 마지막으로 바질! 바질 크로플은 ‘향수로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강렬하지만 크로플의 달달함도 공존하는 향? 페퍼 향이 강하다. 코감기로 이비인후과를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코에 쏘는 바람총처럼, 바질향이 코에 쿡 박히는 것 같다. 느끼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메뉴로 어림짐작해본다. 겉에 자기 주장이 강한 말린 고추씨와 뻘건 가루(?) 때문에 매운 빵 정도로 매우려나했는데, 강한 비주얼에 비해 매운 맛은 거의 나지 않는다. 원래 크로플을 좋아하는 나는 느끼함이 싫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순 없지만, 플레인과 치즈랑 비교했을 때 딱히 별반 다를 것 없는 맛. 이것 역시 다 먹지 못해서 남겨두었는데 크로플을 넣어둔 봉지에 며칠 동안 바질 크로플 향이 났다. 새들러하우스의 모든 크로플을 맛본 나는 여한이 없었다. 좋은 식사였다. 할 만큼 배도 불렀고, 퇴근 후라 더 달콤했다. 수많은 퇴근 중에 하루는 달콤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밀가루로 만든 단 것들을 더 찾아 헤매야겠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진감래’하면 폭탄주를 떠올리게 되는 직장인이지만, 옛 말에 틀린 말 하나 없다고 이 사자성어는 진리라 믿는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올 것이고, 그 즐거움은 고생한만큼이나 더 달콤할 것이다. 어쨌든, 크로플 만세!